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의 진상과 특이점에 관한 조사보고회 종합 연구결과 발표

입력 2021년04월20일 09시53분 김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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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사북 사건 관련 국가폭력 문제에 대한 최초의 ....

[여성종합뉴스/김종익기자] 오는 21일 사북항쟁 41주년을 맞아 정선지역사회연구소(소장 황인욱)는 1980년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의 실상에 관한 조사보고회를 20일 오전 10시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되는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의 실상과 특이점에 관한 조사보고서>는 지난 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9개월 간 수천 쪽의 문건과 약 50명에 달하는 증언자의 구술을 조사하고 정리한 결과이다. 20년 전인 2001년 9월 이원갑·신경 등 사북항쟁 핵심관련자 30여 명이, 자신들이 겪은 고문 상황을 기자들 앞에서 재연한 이래, 간헐적으로 고문 피해에 관한 증언이 있었지만 이번 보고서는 “사북항쟁 시기의 국가폭력”이라는 단일 주제로는 처음 시도된 종합적 연구조사 성과다.


정선지역사회연구소는 지난해 4월, 사북항쟁 시기 광범위하게 벌어졌던 국가폭력의 진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 공동연구를 제안하였다. “진실의 힘”은, 사북항쟁 관련자 중 상당수가 이미 사망한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당사자의 언어’로 된 국가폭력에 관한 기록이 사회적 담론장에 나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연구팀을 구성했다.

 

“진실의 힘”은 2018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태 조사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연구팀은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80년 사북 사건 보고서> 내용을 기초로 하여, 서강대 인문학연구소의 구술 기록(2000), 이원갑과 신경 씨의 재심 기록(2010~2015), 국사편찬위원회 구술 기록(2017)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구술 기록(2018) 등 기존 자료를 모두 검토하면서 국가폭력 관련 내용을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이와 별도로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 중 15명을 직접 만나 국가폭력에 관한 상세한 구술을 추가로 확보하였다.

 

특히 최근 사북항쟁의 역사적 사실 관계를 철저히 고증하며 새로운 증언을 발굴해 나가고 있는 사북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팀(감독 박봉남)의 인터뷰 자료(2020)는 이번 보고서 완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선지역사회연구소는 이번 보고서를 국가인권위원회와 제2기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전달할 계획이며, 번역 작업을 거쳐 유엔인권위원회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국가폭력의 사례로 보고하고 여러 인권단체와 연대하여 사북항쟁 관련자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할 계획이다.


● 연구조사 요약
1980년 사북항쟁 시기에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은 그 비열함과 공공연함, 잔혹함의 면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1980년 4월 21일 조용한 탄광 마을에서 수십 명의 노조원 농성이 수천 명의 광부와 부녀자가 합세한 항쟁으로 전화한 것은 경찰 지프차가 농성중인 광부를 향해 돌진하고 타고 넘어 치명상을 입히고 달아난 것이 시발점이었다.

 

사북광부들의 분노가 제일 처음 향한 대상이 경찰관이고 경찰지서라는 사실은, 사북항쟁의 도화선이 무엇이었으며 항쟁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80년 사북사건 결정문」조차 이 중대한 국가폭력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규정함으로써, 사북항쟁의 발단과 결정적인 원인에 대한 신군부의 왜곡과 은폐를 해소하지 못하였으며, 사건을 촉발한 공권력의 바퀴자국을 가린 ‘노노갈등’ 프레임은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재하다.


사북항쟁은 국가폭력의 무책임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공권력이 항쟁을 촉발하였으나 그 흔적을 철저히 지우고 피해자끼리 손가락질하도록 만들었다는 점, 압도적인 힘으로 피해자들의 심신을 굴복시켜 잔혹한 국가폭력의 피해 사실을 수십 년 동안 침묵하도록 강요했다는 점, 수많은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안고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당국의 공식 사과나 구제 조치가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이러한 무책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의 노골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심야에 광부 주거지를 기습하여 잠옷바람으로 공개 연행한다거나, 어린 아들 딸과 이웃이 보는 앞에서 구타하며 불법으로 체포해 가거나, 면회객들이 보고 있는 경찰서 마당에서 피가 낭자하도록 연행자들을 구타한다거나 하는 점에서 국가폭력은 전혀 부끄러움을 몰랐다.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은 보복적 성격이 강했다. 연행해 간 남성과 여성 수십 명을 좁은 공간에 같이 몰아넣고 사실상의 공개고문과 성적 유린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우리 현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다.

 

공권력은 광부들과 부녀자들에게 경찰 사망 사건 및 감금 폭행 사건에 대한 분풀이로 고문을 가했으며, 조사가 끝나고 돌아간 유치장에서조차 학대와 희롱을 이어갔다. 특히 참고인들에게까지 다짜고짜 고문을 가하고 십수 일씩 가두었다는 점은 경악할 만하다. 


또한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은 기만적이고 비열했다. 사건이 수습된 후에 당국은 사회적 합의를 깨트리고 수습에 앞장섰던 광부대표들을 대책회의에 오라고 속여 총부리를 겨누고 폭행하며 연행해 갔다. 합동수사단에 끌려간 수십 명의 사람들은 다른 수십 명의 이웃과 동료의 이름을 고발하도록 강요당했으며, 그 결과 사건 이후 소박한 마을공동체가 붕괴되었다.


사북항쟁은 거만한 공권력이 분노를 촉발하고, 무능한 공권력이 사태를 악화시켰으며, 비열한 공권력이 주민을 배신하고, 잔인한 공권력이 인권을 유린하여 마침내 선량한 공동체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던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사북항쟁은, 국가폭력이 어떻게 선량한 주민들을 폭도로 만들고 증오를 양산하며, 수많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면서도 그토록 오랜 기간 침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북항쟁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국가폭력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큰 교훈을 남길 수 있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박다영 진실의 힘 연구원은“사북 문제의 본질은 국가폭력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조차 국가폭력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과거 역사에서 나타난 국가폭력의 문제를 오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사건의 진상 규명과 당사자 사이의 화해와 치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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