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200부 발간

입력 2021년12월16일 08시54분 이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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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문화원이 발간한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여성종합뉴스/이경문 기자] 용산구 용산문화원이 용산기지 내 단일 역사문화유산을 다룬 최초 학술연구 성과로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책자를 200부 발간했다.

 

A4사이즈(210㎜x297㎜), 176쪽 분량이다. ▲사진·지도·도면으로 본 용산위수감옥 ▲용산위수감옥 역사 연표 ▲논고 ▲자료 순으로 편집했다.

 

용산위수감옥은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미군 주둔기 역사를 한 번에 살필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다. 일본군이 설치한 위수감옥(군인, 군속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군 감옥) 중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체가 남아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지난 1906년 일제는 용산에 영구 기지 건축을 결정했다. 한반도 식민지화 및 대륙침탈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용산기지 내에는 일제가 만든 건물이 다수 남아 있는데 특히 위수감옥은 1909년 준공 후 1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옛 모습을 상당부분 간직했다.

 

시대에 따라 이름은 바뀌었다. 용산위수감옥(1909~1923)부터 용산위수형무소(1923~1945), 미7사단 구금소(1945~1949), 주한미군형무소(1949), 육군형무소(1949~1953), 미8군 구금소(1953~1963), 미65의무여단본부(미상~2017)까지. 모두 같은 건물을 지칭한다.

 

현재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의병장 강기동, 장군의 아들 김두한, 장덕수 암살사건 피의자 박광옥, 남로당 조직책 이중업, 박헌영 비서 박시현과 연락책 정재한,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한국의 마타하리 김수임, 시인 김수영 등이 용산위수감옥을 거쳐 간 것으로 보인다.

 

구 관계자는 “군 시설임에도 불구, 다양한 역사적·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군인들 외 민간인들도 다수 수감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책에 수록된 연표를 통해 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고는 4편이다. ▲일제강점기 용산 일본군 위수감옥의 초기 기능과 공간적 특성(황선익 국민대 교수,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 ▲1947년 대한민청 사건과 미군정기 용산위수감옥(서준석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원) ▲숙군(肅軍)과 용산위수감옥(노영기 조선대 교수) ▲한국전쟁 전후 용산기지 위수감옥 변화(전갑생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순으로 글을 실었다.

 

모두가 지난 10월 용산문화원에서 개최된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학술심포지엄 결과물이다.

 

이 외도 김두한 대한민청사건 관련 미군정재판문서, 장덕수 암살사건 관련 미군정재판문서, 안두희 진술 녹취록, 김수영 시인 수기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 등 자료를 수록, 깊이를 더했다.

 

책자를 총괄 기획한 김천수 실장은 “위수감옥 연구는 용산기지 중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며 “향후 대상과 주제를 확대, 연구를 심화·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기지 내 1000여동에 이르는 역사적 건물과 유산들은 한국근현대사를 지켜보고 증명해 온 역사 그 자체”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 묻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구는 올해 ‘용산기지의 역사를 찾아서’ 통합본을 발간하기도 했다. 총 3권, 1028쪽 분량이다. 기지 역사를 종합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성과로 근대 이후 일제, 미군기지 건설·운영 과정을 다뤘다. 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등에서 수집한 도판, 자료를 다수 추가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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