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부마항쟁 38주년 기념식 참석

입력 2017년10월17일 05시55분 이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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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열 동대문구청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6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38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하고 있다.
[여성종합뉴스/이경문기자]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16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38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민주항쟁의 뜻을 기리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부산과 창원의 민주항쟁기념사업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박종철 합창단의 '아침이슬' 합창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사, 제26회 민주시민상 시상, 유치준 씨 유족 발언, 축사, 특별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등에서 유신체제에 항거해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박정희 유신시대의 종말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각종 시국사건과 관련된 민주인사들을 강압적으로 체포ㆍ연금ㆍ구금을 하던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자 김영삼 의원직 제명안을 변칙으로 국회를 통과시켜 의원직을 박탈하는 등 유신 독재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이에 따라 1979년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는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에는 동아대학교 재학생을 비롯한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여 시민들이 합세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에도 ‘유신체제타도’와 ‘정치탄압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어졌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10월 20일 정부는 마산과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여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10월 26일 부마사태의 수습책을 둘러싸고 유신독재의 심장부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이다 유신체제는 종말을 맞았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부산 동아대학교 정외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부마항쟁에 참여해 주동자로 몰려 보안사에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삼청교육을 받는 등 고초를 겪다가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불의에 항거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수배자로 몰려 몇 개월을 피신해 다니다가 붙잡혀 보안대에서 36일간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던 일이 3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유신시대의 종말과 80년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부마항쟁의 진상이 밝혀져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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