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조갑제의 30년 이야기

입력 2013년06월04일 13시48분 민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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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조갑제의 30년 이야기서적>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조갑제의 30년 이야기

[조갑제 닷컴] 광주사태가 발생한 지 33년, 이 사건을 둘러싼 온갖 추측과 억측은 끊이지 않는다. 6공화국 이후 출범한 정부들은 광주사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그 결과 많은 의혹들이 해소됐지만 ‘북한군 개입說’과 ‘2000명 사망說’은 아직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趙甲濟 기자는 광주사태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얼마 안 되는 기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후 ‘시민군’과 ‘계엄군(공수부대)’을 모두 취재해 광주사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해왔다. 광주사태의 全貌(전모)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최근 불거진 루머에 종지부를 찍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趙甲濟의 광주사태》(464페이지, 1만5000원, 조갑제닷컴)를 출간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진실 위에 正義를 세워야지, 正義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하면 자기 부정으로 自滅(자멸)한다”고 경고한다. 이념과 정파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오직 사실에만 기초해 광주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군 개입설’을 믿고 싶은 사람들

저자는 일부 보수우파 세력이 盲信(맹신)하는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說’을 사실에 근거해 반박한다. 趙甲濟 기자는 계엄령下의 광주는 市界(시계)가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어 있어 수백 명에 달하는 북한군이 침투할 수 없었으며, 이는 ‘투명인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광주 시민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2000명 사망說’ 역시 사실이 아니며, 정부 측이 발표한 ‘191명 사망(注: 광주사태 직후 계엄사가 발표한 사망자 수. 1995년 7월 서울지검은 193명으로 발표)’이 유력하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는 이런 논란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속성을 예로 든다. 이런 사람들은 記者(기자)들의 취재자료나 정부가 발표한 통계는 무시하고, 자신의 이념이나 주관적 인식에 진실을 꿰어 맞추려는 특징이 있다. 趙甲濟 기자는 “狂信者(광신자)들을 이기려면 우리는 狂信者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조지 오웰의 警句(경구)를 인용하며 이들의 覺醒(각성)을 촉구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조작

이 책에는 광주사태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사실 왜곡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화려한 휴가’는 2007년 개봉 당시 73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與野(여야)를 막론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격찬했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해 극화했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하지만 계엄군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무릎 쏴’ 자세로 亂射(난사)하는 장면 등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영화는 공수부대를 ‘살인기계’로, 시민들을 ‘영웅’ 또는 ‘천사’로 대비시키며 反軍감정을 자극했다. 이 책은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이었던 安富雄(안부웅) 씨의 증언과 검찰 수사 발표문을 통해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민군이 저지른 계엄군과 경찰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 책에는 광주에 투입되었던 대대장들, 戰警(전경), 시민군, 屍身(시신)을 수습했던 공무원의 手記(수기)와 ‘5·18 수사보고서 全文(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 刊)’이 실려 있어 광주사태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다.

| 책 속으로 |
문제는 이렇게 황당한 주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2000명 사망설이 퍼진 것이나 북한군 개입설이 퍼진 배경엔 믿고 싶어 하는 감정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2000명 사망說을, 좌파나 호남에 反感(반감)을 가진 이들은 북한군 개입설로 기울었다. 광주사태를 聖域視(성역시)하여 일체의 비판을 거부하는 데 대한 반감,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반발, 특히 좌파 세력이 광주사태를 악용하는 데 대한 거부감, 선거 때의 호남 몰표에 대한 경계심, ‘어떻게 민간인이 총을 들고 교도소를 습격할 수 있나’라는 의문 같은 게 터무니없는 북한군 개입설의 확산을 도왔다.-34페이지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했다’는 자막을 내어보냈다. 집단발포 장면은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造作(조작)한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없는 내용을 극화’한 것이다. 첫째, 영화에서는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고 탄창을 M16 소총에 일제히 끼운 뒤 무릎 쏴 자세를 취한 다음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히 사격한다.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가장 정밀하게 조사했던 1995년의 서울지검과 국방부 검찰부도 사격명령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79~80페이지

머리글\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33년 이야기 … 14
1\북한군은 오지 않았다!
2\영화 ‘화려한 휴가’의 ‘화려한 造作’
3\공수부대의 광주사태
4\全斗煥 단죄는 正義를 구현했나?
5\공수 3여단 15대대장 朴琮圭 手記
6\최초 투입 7여단 현장 지휘관들의 手記·證言
7\총을 들었던 ‘시민군’ 崔英哲의 증언
8\屍身 수습 공무원의 증언
9\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5·18수사보고서(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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