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50년 넘게 약수동 지킨 이발사 송광채씨

입력 2016년09월07일 08시31분 이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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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동-미성이발소 송광채
[여성종합뉴스/이경문기자] "40여년 넘게 가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검은 머리였는데 백발로 바뀔 때까지 오는거죠. 한달에 한번 꼴로 오는 손님이 발길이 끊기면 혹시 돌아가셨는지 걱정이 되곤 합니다."
 
지하철 약수역에서 약수시장쪽 작은 골목을 걷다보면 오래된 국밥집, 순대국집, 떡집 등이 친근한 글씨의 간판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약수동 주민들과 함께 해온 약수시장 귀퉁이에 위치한 미성이발소는 너무 작아 자칫 지나치기 쉽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오랜동안 주민들의 삶과 함께 해 온 전통시장이 위치한 중구 약수동에서 45년째 미성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광채씨(68).
 
그 경력만큼이나 오래된 낡은 흰 가운을 입고 있지만 그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발의 달인'이란 별칭을 얻고 있다. 바로 정부에서 인증한 '이용 기능장'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이용 기능장'은 해마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주관으로 필기와 실기를 통해 뽑는데 91년부터 지난 해까지 전체 합격률이 36.2%에 불과할 정도로 따기 어렵다.
 
송씨는 61세때인 2009년 이 자격증에 도전했다. 환갑을 넘은 나이였지만 이용업에 대한 철저한 그의 열정과 직업의식이 있어 가능했다. 이미 96년 제23회 전국이미용기능경기대회에서 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할 만큼 그의 이발 기술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실기야 자신있는데 필기가 문제였어요. 이론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어 책을 열심히 봤는데, 조금전에 봤던 내용을 금방 까먹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밤에 집에 와서도 스탠드 켜놓고 책을 봤죠. 그것을 보고 아내나 애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그는 전북 정읍 출신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중학교만 졸업하고 1967년 서울에 올라왔다. 이때 배운 기술이 이발이었다.
 
당시 한 이발소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고 청소하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푼푼이 모아 마련한 돈으로 1976년,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약수동에 직접 이발소를 차렸다. 본인 표현으로는 시골 촌놈이 타향에서 열심히 일해 서울에서 사장님 소리를 듣게 되었단다.
 
주택재개발로 약수동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는 약수동에서 가게를 3번이나 옮겨야 했다. 50년 가까이 약수동에 자리잡고 있다보니 제2의 고향인 약수동을 떠나지 못한 것. 10년 전에 지금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게 자리가 바뀌어도 꼬박꼬박 찾아오는 손님의 대부분은 단골손님들이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기도 하고,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대부분이 단골이라 남의 손 타는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송씨를 찾는다. 때문에 혹시 왔다가 허탕치고 가는 손님들이 있을까봐 휴가도 오래 쓸 수 없다.
 
이발소는 1970~80년대가 가장 성행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앉아 한두시간씩 기다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요즘은 이용업과 미용업이 한 직종으로 묶이면서 이발사의 전문성이 사라져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퇴폐업소라는 이미지가 있어 전통을 고수해온 송씨는 마음이 아프다.
 
"나이가 들어도 몸만 건강하면 정년퇴직 걱정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요즘 그런 직업 찾기 힘들죠. 하지만 80년대 이후 일부 무책임한 이발소로 인해 퇴폐업소라는 이미지와 함께 마사지, 미용업과 혼용되어 이발소의 고유성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전문직업군인데 말이죠."
 
1남1녀를 두고 있는 그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을 만큼 자부심을 갖는 이발소라 후배 양성을 하고 싶어도 퇴폐업소라는 이미지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최신 시설을 갖춘 남자 전용 체인 이용업소로 몰리면서 전통 이발소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봐야만 했다. 70년대 중구에만 500여개 달했던 이발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더니 지금은 70~80여개 밖에 남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발소가 사랑방 역할을 했었죠. 이발소에서 소주 한잔 하며 동네 손님들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손님을 맞이하는 그의 손길은 더더욱 세심하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정성을 들여 손님을 맞이합니다. 다 단골 손님들이라 말씀 안하셔도 취향을 알 수 있어요."라며 웃는 송씨의 미소에는 약수동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정감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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