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인천과 양양 유적 '신석기 농경문화' 확인

입력 2015년11월02일 14시35분 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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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압흔분석을 통해 한반도의 농경기원과 선사시대 경제생활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

사진=문화재청 제공, 인천 운서동 유적에서 나온 토기와 압흔의 조(왼쪽). 오른쪽은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발견된 압흔의 기장
여성종합뉴스] 2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인천 운서동Ⅰ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에 대한 압흔(壓痕) 조사결과, 우리나라 초기 농경의 발전양상을 밝혀줄 조와 기장 등의 곡물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의 일환으로 (재)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학교박물관 등과 함께 진행됐으며 인천 운서동Ⅰ유적은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4000~ 3600년경 형성된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이번 조사결과 신석기 시대 전기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Ⅰ유적에서 다량의 조와 기장 등 곡물 압흔 131점이 확인됐다.


이로 인천 운서동Ⅰ유적은 곡물 압흔이 확인된 우리나라의 대규모 취락 유적지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유적으로 밝혀졌다.


또 신석기 시대 중기의 취락 유적인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도 조와 기장 등의 잡곡과 들깨 등 압흔 294점이 조사됐다.


이는 중부 서해안에서 시작된 초기 농경이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인천 운서동 유적 조사 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중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방식이 크게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양양 지경리 유적은 타 유적과는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고 수렵·채집뿐만 아니라 농경의 비중이 컷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발견된 조와 기장, 들깨의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쌓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해 토기가 제작된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연구성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한국 신석기시대 고고식물 압흔분석보고서'로 발간해 국내외 국공립 도서관과 국외 연구기관 등 관련 기관에 배포하고 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에 게재해 전자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중국의 화북, 요서지방에서 이뤄진 조 중심의 초기농경이 이곳에 도입돼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다고 학계는 추정하나 이번조사에서 재배 종자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토기 압흔분석을 통해 한반도의 농경기원과 선사시대 경제생활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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